사랑과 감사의 시간…교황 내포순례길 따라가기


영남, 호남, 호서, 관동을 아는 그대, 혹 내포를 아십니까?


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지대를 일컫는 내포 지방 말입니다.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(非山非野)의 고장. “그랬어유”, “저랬어유” 하는 오리지널 충청도 사투리가 인심을 더하는 곳. 그래서 더 정이가는 곳.


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 선생이 ‘택리지’에 “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좋다”고 썼던  진짜 이유는 땅의 비옥함이나 물산의 풍부함보다 내포인들의 넉넉한 인심때문이 아니었을까요?


아산온천, 추사고택, 수덕사, 삽교호관광지 등 볼 것 즐비한 내포에 가야할 또 다른 이유가 생겼습니다. 바로 ‘교황 따라가기’입니다.


내포는 충청도 양반의 고장이었지만 그 양반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 유교사회와 대척했던 서학 천주교의 고장이었기도 합니다.


이 때문에 근 백년에 걸쳐 지독한 박해를 받았고요. 또 그 과정에서 첫 한국인 신부의 탄생과 순교라는 영광과 고난이 점철되기도 했습니다.


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우리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포를 찾은 것도 다 이같은 이유에서일겝니다.

 

▲당진 우강면에 위치한 김대건 신부 생가터 ‘솔뫼성지’ 입구. 교황의 내포 첫 방문지로 뫼 산자와 무덤을 형상화한 독특한 출입구가 인상적이다.


◇ 솔향 가득한 작은 동산, 김대건 신부 생가터 당진 솔뫼성지


교황의 첫 방문지인 당진 솔뫼성지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가 태어난 곳입니다. 솔뫼라는 이름답게 작은 동산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정감있게 어우러진 곳이지요.


그래서일까요. 솔뫼성지의 첫 인상은 푸근하고 소박합니다. 서양의 그것처럼 위압감을 주거나, 종교적 엄숙함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.


김대건 생가터도 그렇습니다. 2004년 복원된 생가 뜰에는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. 이제는 성인이 된 김대건 안드레아와 교황의 만남. 시공간을 뛰어넘은 영적 회합에 비신앙인들도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집니다.


시선을 주위로 돌리면 솔뫼성지의 유명한 포토존들이 나옵니다. 높다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과 건너편 솔뫼 아레나를 둘러싼 열 두 제자의 조각상이 바로 그것입니다.

 

▲솔뫼성지 내 12제자 동상. 최영철 작가의 작품으로 시칠리아 대리석을 사용했다 한다.


이탈리아의 미래주의 거장 카를로 카라(Carlo Carra)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제자 최영철 작가의 작품으로 조각상의 대리석은 시칠리아산이라고 합니다.


예수상 밑에는 돌무덤이 형상화돼있는데 그 중 커다란 돌이 눈에 띕니다. 박해시대 처형틀로 사용됐던 돌이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거치며 원혼을 보이다가 이곳에 와서야 영원한 평안을 찾았다고 합니다.


‘십자가의 길’이라는 예수의 고난을 표한한 조각들이 있는 소나무 숲 ‘순례’는 비신앙인들에게도 추천할만 합니다. 5월 피톤치드 가득한 상쾌한 소나무향을 맡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.


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신앙인들은 솔뫼성지 기념관과 성당을 둘러봐야겠지요. 김대건 신부 등 한국 천주교의 역사(비록 처절한 박해의 역사지만)와 교황의 방문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.

 

▲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의 생가. 기도하는 교황의 사진이 왠지모를 감동을 준다.


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한 시간도 부족하고, 대충 훑어보시는 분들은 5분이면 끝날 듯 하니,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.


참, 교황 방문 기념으로 마련된 교황족흔(발자국 문양) 동판에서 발크기를 확인해보는 것 잊지 마시고요!


◇ 쌍둥이 종탑의 합덕성당과 처연한 역설의 미학 해미읍성·성지


솔뫼성지를 나와 교황이 방문한 내포의 두번째 성지 서산 해미성지와 읍성을 가기 전 둘러볼 곳이 있습니다. 빨간 벽돌과 두 첨탑이 인상적인 고딕풍의 합덕성당이 그곳입니다.

 

▲두 개의 뾰족 첨탑이 인상적인 합덕성당.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롭다.


인근 아산 공세리성당과 함께 내포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종탑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. 어째 남몰래 집시여인 에스메랄드를 흠모하던 ‘노틀담의 꼽추’ 콰지모도가 나올 듯 하네요!


서산 해미성지는 사실 인근의 해미읍성으로 더 잘 알려진 곳입니다. 풍광만큼 이름도 예쁜 해미읍성이지만 박해 당시에는 거대한 형장이자 순교터였습니다.


이곳은 3심제를 채택한 조선의 형법상 사실 처형을 할 수도, 해서도 안되는 지역입니다. 그저 곤장 몇 대가 처벌의 다인 곳이었지요. 하지만 국사범인 천주교인에게는 현장 처분이 기다리고 있었지요.


때문에 내포 인근에서 잡힌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넓찍한 해미읍성에 끌려와 심문을 받고, 처형되고, 또 일부는 인근 여숫골에 생매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.

 

▲서산 해미읍성. 100여년전 천주교 박해터로 비명소리 가득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족과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넓디 넓은 읍성 안에서 끊이지 않는다.


순교자들이 붙들려가며 “예수 마리아” 를 외치던 소리가 마을사람들에게 ‘여수머리’로 전해지며 여숫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지요.


해미성지에도 넓다른 돌이 놓여져 있습니다. 자세히 보면 붉은 빛이 흐릿한데, 순교 당시 흘린 혈흔이라고 하니 왠지 숙연해지는 느낌입니다.


그 참혹했던 곳이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순교 기념관과 성지로 바뀌었습니다. 굳이 종교적인 관점을 벗어나면 잠시 쉬고, 명상할 수 있는 안식처로 조성이 됐습니다.


거친 돌이 오랜 풍파 속에 둥글둥글한 조약돌이 되듯,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며 박해마저 용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.

 

한결 평온해진 마음으로 순교지를 나올 찰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메시지가 눈에 띕니다.


“고맙습니다. 사랑합니다.”


이 말은 특정인이 아닌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. 가정의 달 5월, 교황을 따라 내포길을 순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요. 떠나세요! 인생 가장 빛나는 이 봄에….


◇ 여행 팁


관광주간을 시작으로 6월 30일까지 주 3회(주중 1회, 주말 2회) ‘교황 따라가기 기차여행’ 상품이 출시됐다.


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솔뫼성지와 해미성지· 해미순교기념관을 비롯해 인근 해미읍성, 삽교호관광지, 서산 동부전통시장 등을 둘러보는 당일 기차+버스여행이다. 점심으로 나오는 교황밥상인 꺼먹지 정식과 체험이벤트, 인증샷 이벤트는 덤이다.


5월은 당진, 6월은 서산 중심으로 운영되니 예약 및 기타 사항은 아래 전화로 확인하면 된다. 코레일(041-632-7788), 하나투어(02-2222-2653). 기타 일정은 충남문화관광(http://tour.chungnam.net/event.html)에서 확인할 수 있다.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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